고 박경리 작가의 정릉집이 있는 골목을 나와 정릉천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얼마 못 가 하천 우안으로 정겨운 한옥 담장을 두른 울창한 숲이 나타나고 그 안쪽에 기와 지붕들이 보입니다. 천년고찰 경국사입니다.
산책로를 벗어나 다리를 건넙니다. 보통 오래된 절 입구에는 승속의 경계를 상징하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경국사 앞에는 두 개의 돌다리가 있습니다. 아래쪽의 작은 다리는 반야교, 그보다 위쪽의 넓고 큰 다리는 극락교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끼에 덮여 잘 보이지 않지만, 반야교 앞 석벽에는 한자로 쓴 ‘이원우씨영세불망비’란 글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왼쪽에는 ‘소화 칠년’이라 씌어 있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이 다리를 중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리에 담긴 사연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갑니다. 절은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절대자 부처가 설법을 행하는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주문을 통과하여 걷는 일은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진입로를 따라 걸을 때 들려오는 정릉천의 물소리는 마음에 묻은 먼지와 때를 씻어주는 듯합니다.
경국사 일주문 ©성북마을아카이브
진입로 왼쪽 낮은 언덕에는 승탑과 비석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절의 역사와 큰스님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절의 역사기록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국사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배관해야 하는 불상이 있습니다. 바로 극락보전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입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이 목각 불화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히고 세부 묘사도 정교하여 한눈에 봐도 걸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금빛 찬란하여 고요한 법당 내부를 환하게 밝힙니다.
▲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일러스트 이미지)
법당 한구석에 놓인 방석으로 가 앉아봅니다. 불멍. 타오르는 불이 아닌 미소 짓는 부처를 바라보며 ‘불(佛)멍’에 잠깁니다. 극락보전을 가득 채운 부처와 보살들의 미소에 둘러싸인 채 일상의 집착과 긴장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위치 성북구 보국문로 113-10 경국사(조계종)
성북문화원 마을아카이브팀 ☎ 02-765-1611
성북구청 기획예산과 ☎ 02-2241-3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