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주얼
십몇 년 전쯤, 아마도 7월 아니면 8월. 연일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과 푹푹 찌는 공기에 지친 우리는 뭔가 시원한 걸 먹고 싶었고, 그녀는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며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낯선 성북동 길을 올라 다다른 곳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이었다. 오래된 나무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마당과 고색창연한 한옥이 나타났다. 이쁘지? 여기는 빙수가 유명해. 그녀의 말마따나 대기 손님이 꽤 있었다. 정원수의 짙은 녹음 아래에서 자리를 기다리며 고고한 한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만으로도 무더위에 지친 심신이 한결 편안해지는 듯했다.
잠시 후 마당을 향한 대청 자리에 앉게 된 우리는 빙수를 주문했고, 곧 빙수가 소복이 담긴 아담한 유기그릇이 소반 위에 놓였다. 숟가락으로 눈처럼 희고 보드라운 얼음과 검붉은 팥을 조심스레 떠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청량함과 달콤함이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정원수를 살며시 흔들고 다가온 여름바람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땀을 식혀주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았고, 처마 바깥으로 넓게 펼쳐진 고요한 하늘은 눈이 시리게 새파랬다.

그때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을까. 좋다? 맛있다? 어쩌면 행복하다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쉽사리 날카롭고 뾰족해지는 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 중이었지만, 수연산방에서 빙수를 먹었던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말랑하고 둥글었던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흐릿해질 법도 한데, 그날 우리를 둘러싼 풍경의 색상과 계절의 온도, 그리고 편안하고 다정했던 기분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성북구에서 9년간 살며 수차례 여름을 보내고 많은 추억도 만들었지만, 성북과 여름을 키워드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바로 그 여름 처음 방문한 수연산방의 모습과 그곳에서 먹은 빙수의 맛이다.
여전히, 아니 전보다 훨씬 덥고 힘든 올해 여름이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때, 이제는 아내가 된 그녀와 함께 오랜만에 수연산방을 방문해 빙수를 먹어야겠다. 그날의 느긋하고 평안했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 소설가 주얼
2020년 1월부터 독립서점 부비프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 소설 창작을 시작하였다.
2022년 출판사 〈이스트엔드〉를 설립해 출판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소설집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여름의 한가운데』, 『달이 뜨는 동쪽, 세상의 끝』, 『당신의 판타지아』
산문집 『어떻게든 쓰겠다는 다짐』
단편소설 『반지하와 스킨답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