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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인의 이야기] 성북동 천주교 수도원 옆 골목에서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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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 끝에서 만난 고요
성북동 _ 김수현님
성북구 성북동 골목 어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돌계단 하나가 있다. 수도원 벽을 따라 이어지는 이 계단은, 오래전 성북동이 ‘서울의 뒤뜰’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어딘가 다른 시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바닥의 이끼 낀 틈새,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풍금 소리, 그리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햇볕을 만끽하고 있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이 있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이 계단 위에서, 나는 매번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복잡한 생각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고, 마음은 어느새 숨을 고른다.
성북구엔 북악산 자락 아래로 숨어있는 이런 공간들이 참 많다. 가끔은 명소보다도 더 깊은 위로를 주는, 아무도 모르는 골목 하나. 그게 내가 성북동을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