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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이 모여 독립을 위한 큰 함성으로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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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쓰여있는 3·1운동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 첫 줄에는 대한민국이 3·1운동의 영향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쓰여있다.




독립선언을 하였던 그 날,
기미년 3월 1일

3·1운동은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후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무력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비밀결사를 통해 전국각지에서 독립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1919년 1월에는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시작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고 2월에는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가 발표되기도 하며 독립을 향한 열망이 더욱 크게 고조되었다. 이런 가운데,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장례식(3월 3일)을 이틀 앞둔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조선의 독립을 선포하는 것으로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한독립의 목소리가 세계로 퍼지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을 외치는 만세시위는 3월 1일 이후에도 서울뿐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일본 도쿄,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미주 등 해외의 동포들이 모여있는 모든 곳에서 이어졌다. 성북구의 거리 곳곳에서도 태극기 또는 횃불을 든 사람들이 독립만세의 함성을 외쳤다. 현재 성북천 보문1교 산책로에 조성된 3·1만세운동 기념벽화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시작이 된 3·1운동

전국으로 퍼진 3·1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국내외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발표한 대한민국 임시 헌장의 전문에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낭독 되었던 기미 독립선언서를 놓음으로 대한민국이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3·1운동의 역사적 소산인 임시정부에서 시작된 지금의 대한민국이 3·1운동의 계승체로서의 그 정체성을 이어오고 있음을 오늘날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3월 1일은 제106주년 3·1절입니다.
태극기 달기에 동참해주세요.

게양 시간 07:00~18:00
게양 위치 밖에서 바라볼 때 대문(아파트의 경우 각 세대의 난간)의 중앙이나 왼쪽
태극기 구입 동 주민센터, 인터넷 우체국, 인터넷 태극기 판매 업체 등




성북구 곳곳에서 이어진 독립운동

한용운 / 오세창 / 임규 / 조소앙

당시의 성북구는 경성으로의 이동이 쉽고 통신이 편리하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결집하거나 은거, 피신하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1919년 3·1운동의 시기에 활약한 성북의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 기미 독립선언서의 인쇄·배포를 위해 원고를 전달한 위창 오세창,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정부에 기미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우정 임규,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이전에 작성된 대한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조소앙 등이 있다.

사진출처
한용운 _ 공훈전자사료관
오세창 _ 독립기념관
임규 _ 공훈전자사료관
조소앙 _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 최초의 국경일,
삼·일·절

만세운동 일러스트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 수립 후, 독립투쟁 1년을 맞이하여 3·1운동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옥중에서 투쟁하는 동포들을 위해 3월 1일을 ‘독립선언일’로 대한민국 최초의 국경일로 정하였다.

그때로부터 3월 1일 독립선언일은 임시정부와 해외 한인들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임시정부의 독립선언일 기념식으로 많은 한인들이 나라 잃은 서러움을 위로 받을 수 있었고 서로 화합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동시에 독립운동을 촉진하고 심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일제의 탄압속에서 거행되는 기념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운동 활동이기도 했다.

2025년 3월호
2025년 3월호
  • 등록일 : 2025-02-24
  • 기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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