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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작품으로 남은 성북의 역사, 글과 그림으로 기억하는 6월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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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6월이다.
74년 전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한국 전역이 전쟁터가 됐고 서울의 주요 길목이었던 성북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북에 살았던 문화예술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전쟁의 흔적과 평화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깊게 새겨져 있다.




원고지에 풀어 낸 그날들
시대의 기억을 증언하다

주요섭, 『길』, 삼성출판사, 1972 성북근현대문학관 소장 / 조지훈, 『역사앞에서』, 신구문화사, 1959 성북근현대문학관 소장
주요섭, 『길』, 삼성출판사, 1972, 성북근현대문학관 소장
조지훈, 『역사앞에서』, 신구문화사, 1959, 성북근현대문학관 소장

성북구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 근현대 문학작품에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길』, 「서울에 돌아와서」 등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소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전쟁의 포탄만이 아니었다. 평범했던 일상과 인간성에 대한 재고, 총칼이 보이지 않는 전선 아래에서 가족들은 끝없는 생존위협을 겪고 이별의 선택을 강요당한다. 전쟁 후 분단으로 이어질 미래를 미리 알고 있는 독자들은 주인공이 인민군에게 월북을 강요당해 떠날 때 그의 어머니가 말하는 “임진강만은 넘지 마”라는 대사에 가슴을 졸이며 다음 장을 재촉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으로 인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어딘가에 있을 가족과 어디에도 없는 이들의 긴 이야기다.




성북근현대문학관

성북근현대문학관에서는 6.25 전쟁의 나날을 글에 녹여낸 소설가 박완서, 주요섭과 시인 조지훈의 작품, 그리고 한용운, 이육사 등 일제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항일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버리고 떠나갔던 성북동 옛집에
피난갔던 가족이 돌아와 풀을 뽑는다.
……
돈암리 길가에서 줏어 업은 전쟁고아는
이름을 물어도 나이를 물어도 대답이 없다.

조지훈, 「서울에 돌아와서」, 『역사앞에서』, 신구문화사, 1959


정학이가 미아리 고개에 다다랐다. 그렇게도 줄지어 달리던 트럭들과 지프차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넓은 길은 피난민으로 가득차 있었다. 늙은이·젊은이·어린 아이들, 손목 잡고 걷는 아이들, 등에 업은 아기들, 품에 안긴 아기들, 킹킹거리며 그 짧은 다리로 어른들의 걸음걸이를 따르느라고 허덕거리는 아이들, 엉엉 울며 뒤따르는 아이들,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할머니, 제 등보다 더 큰 짐짝을 지고 그 위에 아기를 태우고 오는 사내들,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한 여인네들이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울 시내는 피난처인가? 미아리 고개는 불가침의 요새인가?

주요섭, 『길』, 삼성출판사, 1972. 42쪽.


미아리고개로 통하는 전찻길 가에 있는 숙부네 집에선 야밤에 군대나 민간인이 이동하는 소리를 늘 들을 수가 있었다. 오빠도 북으로 끌려가면서 인솔하는 인민군에게 잠시 양해를 구해 가족에게 소식이라도 전하고자 들렀던 것이다. 겨우 그 말만 전하고 다시 끌려가는 조카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숙부하고 숙모는 속옷 바람으로 무작정 미아리고갯마루까지 따라가다가 인솔자가 총대로 밀어내는 바람에 놓쳤다고 한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12, 257쪽.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을
붓에 눌러 그리다

100세의 일기로 타계하기 전까지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북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이어온 근현대 서양화가이자 ‘석양의 화가’로 불리는 윤중식(1913-2012). 그의 작품에는 ‘성북동 골짜기의 비둘기’가 고향과 평화를 상징하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실향민 화가인 그의 그림 속, 황혼에 붉게 물든 풍경에서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향수가 물씬 느껴진다.

1953년 휴전을 했지만 사람들이 겪은 상실의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우리는 사람들 안에 남은 전쟁의 상흔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평양이 고향인 윤중식 화가 또한 전쟁 중 피난길에 오르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그는 피난지에 도착하자마자 어렵사리 구한 그림 도구들로 자신이 직접 겪은 피난의 참상들을 여러 장의 스케치로 남겨두었다.

윤중식 타계 10주기를 맞이한 2022년, 그의 유족들은 주요 유화 작품과 함께 총 28점의 전쟁 스케치 연작을 성북구와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윤중식 작가를 추모하고 작품을 기증한 유족의 뜻을 기리고자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기획전시를 개최하여 작가가 평생 간직해온 전쟁 스케치 연작과 대표작들을 대중들에게 공개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전쟁의 상흔과 사람들의 눈물이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절 사람들이 경험한 아픔이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윤중식의 장남인 윤대경은 전쟁 스케치 연작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할아버지의 양손」(2023년)을 출판하여 아버지의 슬픔이자 한국 역사의 아픈 단면을 다음 세대들에게 담담히 전하고 있다.

윤중식, 전쟁 드로잉
윤중식, 전쟁 드로잉,
19.9x26.5cm, 종이에 수채, 크레용 등, 1951년,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윤중식, 성북동 풍경
윤중식, 〈성북동 풍경〉,
1980, 캔버스에 유채, 45.3x53cm,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윤중식, 석양
윤중식, 〈석양〉,
2004, 캔버스에 유채, 116.7x90.9cm,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윤중식, 전쟁드로잉
윤중식, 전쟁드로잉,
17.8x32cm, 종이에 연필, 수채, 크레용 등, 1951년, 성북구립미술관 소장

2024년 6월호
2024년 6월호
  • 등록일 : 2024-05-24
  • 기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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