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 한 한양성곽 옆 북정마을 골목길 사이, ‘심우장’이 있다.
넓은 도로에 자리잡은 대궐 같은 모습은 아니다. 마치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처럼 조금은 좁고 틈이 많은 길 한편에 자리 잡은 작은 한옥집이다. 공간은 작지만 ‘심우장’에 온기를 남긴 사람들과 그들이 품었던 꿈은 원대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첫 구절만으로도 이름을 바로 떠올리게 되는 시인이자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3·1운동의 주도자로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기거했던 주택이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에 등 돌린
만해 한용운의 북향집
북정마을 골목길 곳곳에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간 곳, 심우장의 대문으로 들어서면 소박한 한옥 건물이 있다. 마당에는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가 있고 서재방 쪽으로는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일창 유치웅 선생이 직접 썼다는 편액이 보인다. 대부분 남향으로 지어진 다른 곳의 한옥과 달리 심우장은 북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는 당시 성북동의 남쪽에 위치한 총독부를 바라보기 싫어서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심우장에는 한용운 선생에게 조언을 얻고자 하는 많은 사상가, 불교인, 문인, 학생 등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1937년 간도 등지에서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하던 일송 김동삼 선생이 경성형무소에서 순국하였을 때는 한용운 선생이 나서 시신을 수습하고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기꺼이 문을 열어두었던 곳이지만 조선총독부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 그 마음처럼 친일로 변절했던 인물들에게는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1930년대 일본의 압력으로 많은 문인들이 친일문학을 하던 시절,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으로 꿋꿋하게 독립을 노래한 한용운 선생의 글은 오늘날까지도 대중에게 읊어지고 있다. 단순히 독립 염원의 수단으로만 읽히는 시가 아닌, 문학적 아름다움을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제에 저항하는 삶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만해 한용운은 해방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병으로 심우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심우장은 1984년 7월 5일에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7호 ‘만해 한용운 심우장’으로, 그리고 2019년 4월 8일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550호로 승격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기억하는 박물관이자 뮤지컬 무대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심우장 내부 전시로 생전 한용운 선생이 남긴 시와 소설, 친필문서, 독립운동가들과의 교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1937년 심우장과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심우〉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 주소 성북구 성북로29길 24
• 관람시간 09:00~18:00(연중무휴)
• 문의전화 성북구 문화체육과 ☎ 02-2241-2652
뮤지컬 〈심우〉
1937년 봄, 만해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일송 김동삼의 장례를 치른 일화를 배경으로 서슬 푸른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과 고민을 보여주는 창작뮤지컬이다. 2014년 초연 이후 현재는 6월이면 만날 수 있는 성북구의 대표적인 문화공연으로 자리잡았다.
600년 전부터 현재까지
북적북적 ‘북정마을’
북정마을은 성북동, 한양도성과 맞붙어 자리잡은 마을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82호,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에는 성북동에 둔진을 설치하고 백성들을 모집한 후 면포를 삶거나 빠는 ‘포백’과 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훈조’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때 메주 쑤는 소리가 ‘북적북적’하고 사람도 ‘북적북적’해서 마을이 ‘북정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북정마을은 한용운의 심우장뿐 아니라 1969년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 마을로도 유명하다. 성벽과 자연, 주거지가 함께 어우러진 마을 경관, 서울의 역사와 근현대를 지나온 흔적을 간직한 북정마을은 드라마·영화의 촬영지, 사진 출사지와 산책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중동중학교에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일본의 민족차별정책, 조선어말살정책, 언론탄압정책 등을 비판하며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킨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광복 이후 성북구 성북동에 거주하며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를 썼다. 심우장 대문을 나와서 좌회전, 갈림길에서 가장 좁은 골목을 골라 길을 따라가면 북정마을의 다정한 풍경 사이에서 작품의 감동을 담은 작은 비둘기 공원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