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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함성이 이어졌던 성북의 길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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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거리에는 태극기를 품고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은 그 후로도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많은 성북의 시민들도 거리로 나왔다.
성북의 거리에도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성북구 만세시위 분포도
성북구 만세시위 분포도


안암천(성북천)을 따라 이어진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23일 오후 8시경부터 당시 안암천으로 불리던 현재의 성북천을 따라 500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민들의 행진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많은 시민들이 검거되었지만, 독립을 향한 시민들의 외침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3월 26일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고, 다시 27일에는 500여 명이라는 더 많은 시민들이 독립 만세 행렬에 가세했다.
현재 성북천 보문1교 산책로에는 3·1만세운동 기념벽화가 조성되어 있어 당시 성북구민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성북천 3·1만세운동 기념벽화
▲ 성북천 3·1만세운동 기념벽화




횃불처럼 타오른 독립의 염원,
돈암리시장

돈암리시장(현 돈암시장)에서도 같은 기간동안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돈암리시장에서 100여 명의 시민들이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했고 3월 27일에는 돈암리산(현재의 개운산으로 추정) 위에서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기록이 남아있다.
돈암시장과 개운산은 현재 성북구의회를 비롯하여 학교와 산책로, 쉼터, 체험장이 있어 지금도 시민들과 가까운 휴식공간이자 생활공간으로 성북의 독립운동이 얼마나 생활과 가까운 곳의 외침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돈암시장 전경
▲ 돈암시장 전경




성북의 이웃 시민영웅들의
3·1운동

사람들의 주거지가 있던 성북리(현 성북동)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했다. 이 날의 만세운동 행진은 현재 성북동 주민센터의 위치를 지나 성북로를 따라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북구에서 1919년 3월 거리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성별과 신분, 직업에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한 마음으로 독립을 외쳤고 그 목소리가 있었기에,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가 평화로운 일상을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현 성북로 모습
▲ 현 성북로 모습




자료출처 : 성북마을아카이브(https://archive.sb.go.kr/),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한민족독립운동사

2023년 3월호
2023년 3월호
  • 등록일 : 2023-02-24
  • 기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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